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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있어야 나도 있다

작성일 : 2018-10-3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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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준
나는 국가적으로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태어났다. 누군들 애국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마음 깊이 간직하고 살았다.
 
내가 민간 외교에 관심을 가지고 처음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피플 투 피플’이라고 하는 단체에 가입한 뒤부터였다. 이후 1975년 12월에 한국 본부 총재를 맡게 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민간 외교에 관심을 지녔다.
그러던 중 1976년 대선 당시 카터가 미국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내세웠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람 중 누구 한 사람 선뜻 나서서 왜 그런 공약을 내세웠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카터를 설득해 미군을 완전히 철수시키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하도록 해야 할 텐데 그런 운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전무했다.
 
평소에 먼저 나라가 있어야 내가 존재하며, 따라서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품고 있던 나는 카터의 큰 오류를 바라만 볼 수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찾아가서 ‘만약 한국에서 미군 병력을 완전히 철수시키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완전히 소련의 지배 아래 들어가서 그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점을 강력히 외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품고 행동에 착수하고 있을 무렵 카터의 절친한 친구인 웨인 스미스라고 하는 미국인 목사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웨인 스미스는 카터와 절친한 사이인데, 카터가 남미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던 그를 불러 우정의 사절단이라는 단체의 총재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우정의 사절단 총재가 되어 각국을 순방하던 중에 우리나라에까지 오게 되었다.
 
나는 그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김장환목사를 통해 스미스와 만나기로 했다. 당시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나를 찾아온 스미스에게 평소 마음속에 있는 간곡한 뜻을 전달했다. 이후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 한반도에서의 미군 철수라는 그의 공약은 수정되었다. 스미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들은 바에 의하면 나의 말을 전해 듣고 그의 생각에 변화가 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때 나는 민간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절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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